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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생강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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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생 생강 최초 시배지
지석묘 밑의 자생한 향초 ‘시앙’ 전설
- 생강시배지 설화는 봉동읍 설화로 내려오는 <구 바위> 전설이 대표적이고 <이서구 예언설>도 있다.
- 이 밖에 중국에서 생강 종자가 들어왔다는 외부 유래설로는 <기자조선 유래설>과 <신만석 유입설> 등이 있다.
구바위 전설
- 봉실산 주변 세 개의 바위, 은상, 신봉, 추동 바위를 구 바위라 한다. 이곳에서 생강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구 바위 밑에서 자라는 향초를 ‘시앙’이라 불렀다. 이 종자가 인도나 중국산과 다른 토종 생강일 것이다.”
신만석 유입설
- 고려 초 사신 신만석이 중국 봉성현(鳳城縣)에서 생강 유입하여 전남 나주, 황해 봉산에 심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전북 완주의 봉상(지금의 봉동)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한국 생강의 시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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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생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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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봉동읍 구만리에는 이방간을 추모하기 위한 봉강서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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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통의 한국 봉동 생강
서기 1018년 『고려사』 의 기록문헌에 나타난 생강 관련 자료
- 생강에 대한 우리 역사의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 7권 제35에 있는 “북쪽 변방에 전사한 장수와 병졸의 부모처자에게 차, 생강, 베를 하사하다”(1018년)라는 기록
서기 1414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방간이 보낸 생강’
- 태종 14년(1414년 4월 19일 임술 2번째 기사, 영락 12년)
司憲府疏請靑原君 (沈悰)〔沈淙〕罪。悰〔淙〕於去年秋, 扈駕南幸時, 潛受芳幹所遺之薑, 不以上聞故也。사헌부에서 상소하여 청원군(靑原君) 심종(沈悰)의 죄를 청하였으니, 심종이 지난해 가을에 어가(御駕)를 따라 남행(南幸)하였을 때에 몰래 방간(芳幹)이 보낸 생강(生薑)을 받고도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백산고본] 12책 27권 25장 B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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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봉동생강(전주생강)의 우수성이 일찍이 조선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록되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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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명시된 최소 500여 년 동안 입증된 봉동생강의 우수성
1454년부터 1918년까지 봉동 생강 관련 기록 자료
표 1) 봉동생강 우수성 관련 기록 자료
출처 | 연도 | 주요 내용 |
세종실록지리지 | 1454년 | 전주특산 생강 |
동의보감 | 1610년 | 생강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전주에서 생산 |
도문대작 | 1611년 | 생강은 전주 것이 으뜸 |
택리지 | 1751년 | 전주 생강은 생산량이 많고 질이 좋음 |
북학의 | 1778년 | 전주 상인들이 생강을 팔기 위해 의주까지 갔음 |
임하필기 | 1871년 | 전주의 생강으로 정과를 만드는데 그 맛이 천하일미 |
- 기록된 시기의 봉동은 전주부에 속해 있어 모두 ‘전주 생강’ 이라고 칭함
중추원의 <鳳翔시장 조사자료> 기록 (1918년)
鳳東面 場基里에 시장을 신설했으나, 시장부지가 좁아서 대정 8년(1919)에 현재의 시장(종래의 시장 동쪽 인접지)으로 移設했다고 하는데 시장은 매월 음력 5일, 10일에 열리며 주요상품은 수산물, 축류, 직물, 생강, 곡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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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한국 최초 생강조합 구성
한국최초 근대 농업조직 <봉상산업조합> 설립
- 생강 판매를 위한 근대적 농업조직 <봉상산업조합>(1930) 설립, 현재는 <봉동생강영농조합>(1993)이 명맥을 잇고 있음.
- 봉상산업조합은 사장 이준목(李俊穆), 중역 윤건중(尹建重)이 중심이 되어 1930년 9월 4일 생강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조합(조선은행회사조합요록, 1931년판)
- 봉상산업조합은 윤건중의 노력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년간 12만석)을 하고 일부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환원시키며 큰 성과를 이룸.(193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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